서울 강남경찰서 탄현1파출소 경사 장 학 수
24절기 중 첫 절기이자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을 맞이했다. 입춘은 동장군의 위세에 눌렸던 만물이 따뜻한 볕을 받아 기운을 되찾는 날이다. 입춘과 함께 찾아오는 것이 졸업시즌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졸업시즌에 학교들은 시끌벅적하다. 오랫동안 우정을 쌓았던 친구들과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아쉬움과 새로운 환경을 맞이해야 하는 설렘이 그것이다.
필자가 학교를 다녔던 1980-1990년대 졸업식 풍경은 전교생이 학교 강당에 모여 개회사와 국민의례 그리고 상장 나눠주기, 선후배간 송사와 답사, 교장선생님의 당부말씀과 졸업식 이후 필름 카메라로 친구·가족과 찍은 몇 장의 사진도 천편일률적이기만 하다. 이어 가족들과 중식당으로 향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른바 "졸업빵"이라고 해서 간혹 학생 간 밀가루를 던지는 장면도 정겹게 느껴지던 시기였다.
2000년 이후에는 학생들의 졸업식 이벤트가 무척 과격해졌다. 밀가루와 달걀로 뒤범벅된 교복을 입고 도로를 질주하는 학생들, 그 교복을 찢는 교복 환송식, 남·여 구분 없이 알몸으로 인간 피라미드를 쌓는 음란행위 등 광경에 눈살을 찌푸리는 학교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고 이러한 것들에 대한 처벌의 목소리도 커지게 되었던 것이다.
아주 친한 사이에서 서로 장난을 치는 경우가 아닌, 특정 학생을 대상으로 괴롭힘을 목적으로 한다면 실제로 다치지 않더라도 밀가루를 뿌리고 날달걀을 던지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폭행 혐의가 성립하며, 졸업식 뒤풀이를 한다며 돈을 빼앗는 행위 역시 “공갈죄”, 옷을 벗게 하거나 알몸 상태로 뛰게 하고 단체 기합을 주게 된다면 ‘강제추행·강요죄’, 그리고 이를 촬영을 하면 "강제추행,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 등이 된다. 모두 형법에 명시된 죄목들이며 처벌될 수 있다.
다행히 졸업식을 소중한 날로 특별하게 기억하고자 하는 이색 이벤트가 대거 등장하며 졸업식 문화도 변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에는 졸업식 날 저녁 학생이 정 들었던 선생님들과 교실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지새우며 그동안의 추억을 되새기는 "1박 2일 졸업식"이 유명세를 탔다. 학교 운동장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노래를 부르고, 맛있는 고기를 구워먹다 보면 졸업식이 지루하고 슬프다는 선입견은 사라지고 유쾌하기만 할 것 같다. ‘아침밥 챙겨 보내는 졸업식’은 교사가 아침 일찍 등교해 졸업하는 학생을 위해 따뜻한 아침밥을 만들어 먹인다. 저녁 졸업식, 타임캡슐 보관, 음악회, 난타공연 등 학교마다 개성을 살린 이색 졸업식이 과거 눈물의 졸업식, 지루한 졸업식, 폭력적인 졸업식 문화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맞춰 경찰청에서도 처벌보다는 졸업식장 주변에 경찰관을 배치하거나 졸업식 시기를 앞두고 과격한 졸업식 뒤풀이의 위법성을 알리려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처벌 위주보다 졸업식 이후에 취약지역 순찰활동을 강화하고, 청소년 밀집지역 뿐만 아니라 청소년 출입·고용금지 업소 밀집지역도 함께 집중적으로 점검해 청소년들의 일탈행위를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월은 막혔던 것들이 다 풀리는, 우리들 봄 소망이 도착하는, 봄 기차역 같은 달이다. 졸업을 맞이하는 모두가 축하와 감사함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뜻 깊은 날이 강압적 뒤풀이가 없어지고 자장면과 꽃다발이 울려 퍼지길 기대하며, 경찰만이 아닌 교육기관·지역주민이 하나가 되어 주변을 관심 있게 살펴본다면 밀가루 졸업식은 사라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