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 오는 봄을 기다리는 것은 나이 들어도 늙지 않는 가장 순수한 감정일 것 같다. 이 순진한 감정이 어느 때와 달리 샛노란 개나리꽃무리의 느낌처럼 성급히 내 가슴에 들어 찬대는 이유가 있었다.
몇 억 원짜리 아파트를 세 주고 철판으로 둘러싸인 네모난 방에 동그라니 앉아 지낸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하지만 시골이라면 마치 꼬리치며 마당에 뛰노는 강아지처럼 좋아하기에 시골 비스름한 곳에 산지가 어언 십년을 넘었다.
지금 살고 있는 봉양리 집 앞에 냇물이 흐르고 논바닥이 펼쳐져 있고 숲과 바람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늘 함께하는 산사 같은 고즈넉함이 드리워진 곳이다.
처음엔 퇴비냄새에 코를 막고 밭고랑을 지나 빙 돌아오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밭에 나가 고추, 상추, 파를 뜯고 감자를 캐고 익어가는 옥수수 수염색깔을 볼 줄 알게 되었다.
이런 곳에 살다보니 집주변은 온통 잡풀과 나무들로 둘러싸였다. 별달리 정원을 가꿀 필요도 없고 자연이 정원이며, 주변이 정원인 이곳에 미련이 남아 머물고 있다. 몇 시간씩 지나다 보면 ‘뿡’ 하고 기적을 울리고 달리는 기차소리에 깜짝 놀랄 때도 있었지만 이젠 그 소리를 듣지 않으면 기적소리가 왠지 기다려질 때도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라던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본 회퍼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이제 뒤돌아볼 길 없이 앞만 보고가도 도착할 시점은 멀지 않아 보이지만 아쉬움과 허전함이 전신을 엄습해 오고 있다.
어떻게 하나 인생인데, 가버린 아쉬움과 다가올 여유로움이 있다면 제 2의 인생을 즐길 수 있을 텐데, 지난 봄 뒷산에 찾아와 몹시 재잘거리던 이름 모를 새들이 올봄에도 다시 찾아와 재잘거려줄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