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전 필자는 시외곽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말이 전원생활이지 집뒤로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연립(빌라)주택 단지가 불과 지천인데도 불구하고 아직껏 필자집은 도시가스가 설치되어 있지않다
오래 전 마을에 도시가스가 설치될 때 서너집밖에 없던 주택(지금도 그대로 이지만)소유주들이 설치비용이 부담되어 아마 그런듯 싶다
또 한 집으로 가는 길은 차량 한 대가 충분히 다닐수있는 소도로이지만 지금껏 비포장도로다 그래서 비오는 날이면 질척하고 맑은날에 차량이 지나가면 흙먼지가 자욱한 곳이다 차도가 불과 100여미터에 있는데도...
그럼에도 필자는 도심을 버리고 아내와 이곳을 택했다.
물론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야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필자가 워낙 짐승(개)을 좋아하다보니 예전 주택에서 송아지만한 개(말라뮤트)3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이중 한 마리가 출산일이 다가왔기에 달리 선택할 틈도 없었다 (이사 후 10마리로 불어남)
비록 다니는 길이 비포장도로였지만 필자부부는 참으로 마음이 편했다. 답답한 도심을 벗어나 맞은편에 산이있고 집앞으로 하천이 있어 폭염이 내리찌는 한 여름에도 시원했다
물론 장마때는 홍수로 축대가 넘칠까봐 위태. 위태하기도 했다
전원생활 중 가장 즐겁고 좋았던것은 집옆으로 자그마한 텃밭이 있었는데 이곳에 주변어르신들의 조언을 받아가며 갖가지 작물을 심을수가 있었다
난생 처음 배추를 심어 김장을 담가먹었고 한해 한해 갈수록 신나고 재미났는데 초보 농부(?)의 작품은 수십년간 농사일을 해오신 주변 어르신들의 농담어린 시샘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말이 도시외곽이지 시골만도 못한 이곳생활에서 생활에 불편할 정도의 문제는 여럿 있었는데. 그중 기억나는 것은 지금은 많이 개선됐지만 당시에는 자녀들이 오고 손녀들이 찾아와도 흔하디 흔한 피자나 치킨 등을 시켜먹을 수가 없었다. 배달 불가지역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일상생활에 약간의 불편과 지장을 주는 문제 외에도 여러문제가 있었는데 그중 필자를 가장 화나게 하고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문제 중 하나는 인근에 사는 일부 주민들의 잘못된 생활습관이 었다
이사온지 얼마되지 않던 어느 휴일날 인근에 거주하는 연립(빌라)주민들이 무엇인가 저마다 한아름씩 들고나와 하천아래에서 집단으로 태우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생활쓰레기였다
큰 충격이었다. 이런곳이 있었다니..주민들은 하늘로 시커먼 연기가 올라가도 아랑곳않고 불길이 뜨거우면 떨어져서 나뭇가지로 열심히들 태워댔다. 심지어는 장판더미까지 가져와 태우느라 매캐한 냄새는 집안으로 들어차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한번이 아닌 매주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떠한 제재나 단속도 없었다
이에 더이상 이같은 문제를 도저히 묵과할수 없었던 필자는 그로부터 서너달 뒤 어느 누구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하천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을 나뭇가지 등으로 바리케이트를 만들어 막아버렸다
그로부터 여러번 쉽게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새벽녘(추정) 누군가 하천에서 불을 지폈던 흔적이 보였다
그러던 중 마을의 지도자라는 주민이 집을 찾아와 “이곳은 도농지역으로 쓰레기를 소각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해괴한 논리를 아내에게 펼치기도 했었다
이후 3년여간 더 이상 하천에서의 쓰레기 소각은 더 이상 찾아볼수 없었다.
물론 필자 스스로도 모범을 보여야 하기에 이사때부터 지금까지 거주지 주변에서 유일하게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고맙게도 일주일에 한번 청소차가 꼭 집을 방문해 쓰레기를 수거해가고 있다
이사온 후 10여마리로 불어났던 개들도 모두 분양시켰고 유일하게 9년째 기르고 있는 가족같은 개(두리)와 부부뿐이었던 조용한 집에 2년전 큰 교통사고로 상처를 입고 아직도 회복이 덜된 큰아들 내외와 손녀가 이사와 함께 살다보니 그동안 밤이면 적막이었던 집에 온기가 느껴지곤 한다
올해 한달내내 비가 내리다보니 제대로 된 작물이 하나도 없다.
상추는 녹아내리고 방울도마토는 비바람에 쓰러지고 떨어지고 그래도 잠깐씩 비춰대는 따가운 햇살에 모질게 생명의 싹을 피운 호박줄기는 어느새 지붕을 타고 올라가 호박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고 몇 개심은 참외도 줄기를 뻗어 어느새 탐스러운 열매가 노란색깔을 뽐내며 익어가고 있다
얼마 전 운동 중 다친 부상부위가 악화돼 최근 어쩔수없이 수술을 받았고 어느 새 병원생활 2주가 가까워 진다. 그러나 회복은 더디기만 하고 더욱이 상처가 오른쪽 어깨부위다보니 하루종일 어깨. 팔을 싸매어놓아 답답하기 이를데없다
그저 하는 일이라곤 운동을 핑계삼아 복도계단을 오르내리거나 병원창밖으로 쌩쌩달리는 차량들을 바라보고 TV시청이 하루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스스로 할수있는게 없어 아내 힘을 빌리다보니 여간 고마운게 아니다
입맛없을까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원을 오가며 먹을것과 반찬을 싸오는 아내의 정성에 지난 30여년 이상을 함께 살아온 아내이지만 새삼 고마움을 또 다시 느껴본다
오늘 병원에 들른 아내가 점심을 들던 중 말했다.
“여보 어제 누가 우리호박을 따갔어” “뭐라고?” 겨울에 손녀들 죽끓여 먹이려고 아내가 애지중지 조심스레 키우고 있던 커다란 호박을 누군가가 훔쳐갔다는 것이었다.
연일 언론에 긴 장마로 채소값 급등. 식탁물가 비상하고 떠들어대더니 드디어 필자집도 누군가의 표적이 된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덤덤하다 애써 키운 작물을 누군가가 말없이 훔쳐갔는데도..
물론 정성스레 키운 작물을 도둑맞았는데 아깝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은.. 아내는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이 가져갔다.고 생각하고 그냥 생각을 지워버리자 한다. 역시 마음이 따사로운 사람이다
전원생활 4년째. 이것이 전원생활에서 누리는 행복의 맛인가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