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덕비는 생전에 펼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우는 비석으로서 같은 뜻을 지닌 불망비/ 선정비가 있는데 송덕비는 덕을 칭송하고. 불망비는 베푼 은혜를 잊지 못하며. 선정비는 목민관이 좋은 정치를 베풀었다는 뜻을 지닌. 즉 고을을 다스렸던 관리가 좋은 정치를 베풀어서 덕을 잊지 못하겠다는 백성들의 순수한 진심이 담겨있다
그 옛날 우리 백성들은 훌륭하고 참된 善政을 펼친 벼슬아치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마을 어귀에 고을주민들의 정성이 담긴 송덕비를 세우고 후손 대대로 그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선정을 펼친 벼슬아치의 명예이자 대대손손 가문의 자랑이자 큰 기쁨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現代社會는 그 옛날처럼 백성과 고을을 위해 헌신하고 아낌없는 선정을 펼친 목민관에 대한 칭송을 기리는 송덕비를 세우는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역사를 되돌아봐도 결코 부끄럽지 않은 그리고 후세에 영원히 남겨질 당대에 펼친 선정에 대한 기록물이 오늘을 대신하고 있다
오래 전 지역치안 책임자인 경찰서장으로 재직하였던 K 서장은 평소 외모에 풍기는 과묵함과 얼굴 가득한 근엄함 때문인지 필자는 업무 외에 쉽게 가까이 하거나 별다른 친근감을 갖지 않은 채 그저 막연히 경찰서장과 취재기자라는 통상적인 관계로 1년여를 지냈다
그러다보니 그 어느 때라도 업무상 쉽게 가질 수 있었던 식사자리나 차 한 잔 함께 하지 않게 되었고 그러는 동안 필자는 지난날 경찰서를 거쳐 간 여느 서장들과 마찬가지로 K서장에 대해서도 특별한 감정 없이 그 어떤 칭송이나 과장 없는 사실그대로의 서장을 대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심야시간대 각종 유흥가와 번화가가 밀집돼있던 지역을 관할하는 파출소(지구대 명칭개편 前)에 취재차 들렸던 필자는 아주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며 K서장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당시 파출소 내에는 팬시점에서 악세사리 등 물품을 훔치다 발각되어 절도행위로 붙잡혀온 여중생 2명이 울고 있었고 그 곁에는 그들의 부모인 듯 안절부절 못한 채 서있었다
그리고 그 한편에서 중년의 남자가 큰소리로 아이들을 향해 야단을 치고 있었는데 아마 피해를 입은 업소주인으로 추측됐다 이럴 즈음 때마침 K서장이 관내순시 차 들렸다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상황을 한참을 지켜보던 K서장은 학생들을 불러 절도를 하게 된 이유를 캐묻더니 곧이어 업주에게 자신이 경찰서장임을 밝힌 후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 너그러운 선처를 부탁하면서 그 피해에 대한 손해를 자신이 하겠다며 업주에게 일정금액을 건네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물론 서장은 필자가 이를 지켜보고 있는 줄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이 같은 광경을 지켜보던 필자는 순간 그동안 서장의 겉모습만 지켜보고 가졌던 선입감이 얼마나 잘못되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이는 오랫동안 지역치안이나 시민에 대한 치안편의보다 자신에 대한 권위만을 내세우던 일부 서장들의 잘못된 모습만 지켜봐왔던 터라 K 서장도 마찬가지겠다 판단했기 때문 이었다
지난 07년 1월 중순 지방도시에서 경찰서장으로 재직하며 자신의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고 있는 K 서장을 7년여 만에 찾아가 만났었다 (07년 1월19일 정년퇴임)오랜 시간이 흘러도 전혀 변하지 않는 근엄한 얼굴이었지만 예전에 보지 못했던 환한 미소를 얼굴 가득 지으며 반갑게 필자를 맞이한 K 서장은 지난 시절을 회상하시면서
돌이켜 생각해도 결코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살아오셨다 자평하시며 필자에게도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아낌없이 가르쳐 주셨다 이에 필자는 고마움의 보답으로 지난 7년 전 K 서장이 남몰래 선정을 베 풀었던 기사가 실려 있는 액자를 선물했었다
한동안 말없이 자신이 행한 善政(선정)기사가 실려 있는 액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K 서장은 지난30여년 이상 재직해온 경찰생활이 후회되지 않는 값진 선물이라며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옛날 목민관의 공적을 기리는 송덕비는 현대사회에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공덕에 대한 기록은 영원히 후세에 남겨지는 지금. 백성을 위한 선정은커녕 권위만을 앞서 내세우면서 자신의 치적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위선을 펼치는 관리들과 달리 지난날 남모르게 K 서장이 펼친 善政은 오랜 시간이 세월이 흘러도 결코 변치 않는 지워지지 않는 송덕(기록)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지난 2007년 1월 평생을 바쳐 헌신한 경찰을 퇴직하시고 지금은 후학들을 위해 강단에서 열정을 펼치고 계시는 김성동 前총경께 이글을 바칩니다
손준용 기자
